흥원

흥원-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묘

흥원-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묘

흥원-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묘
  • 지정번호 : 기념물 제 48호
  • 지정연월일 : 1978.10.10
  • 시대 : 조선말기
  • 소재지 : 화도읍 차산리

조선 말기에 개혁정치를 실시한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생부로서 자는 시백, 호는 석파이며 1848년(현종 9)에 흥선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헌의 이다. 1863년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이 승하하자 후사가 없었으므로 신정왕후 조씨(철종의 모) 에 의해 그의 둘째 아들(고종)이 왕위에 올랐다. 이떄 대원군에 진봉 되었고 국정을 관여하였다.

그는 국내외로 복잡다난하던 시기에 과감한 국정개혁에 착수했다. 당파를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고, 외척 세도를 일소하였으며 서원을 철폐하여 당쟁의 폐해를 없애는데 기여하였다. [대전회통]등 법전을 완비하여 중앙 집권적 정치기강을 확립 하였으며, 비번사를 폐지하여 의정부의 기능을 부활시키고 삼군부를 두어 행정권과 군사권을 분리시켰다. 또 세제를 개혁하여 국고를 충실히 하였고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경북궁 등을 중건하여 조정의 권위를 세우려고 했으며 한편으로는 천주교를 탄압하였다. 서양세력의 침략에 대비하여 서양의 통상요청을 거부하였다. 1866년 프랑스군(병인양요)이, 1871년에 미국(신미양요)이 각각 강화도로 쳐들어오자 이를 격퇴시켰고, 일본의 국교교섭 요구도 거부하는 강력한 대외정책을 폈다.

그는 섭정 10년만에 명성황후와의 알력으로 1873년에 은퇴하였다. 그 후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다시 집권하였으나 청나라에 강제 납치되어 천진에 4년간 갇혀 있기도 하였다. 대원군의 묘는 원래 1898년 고양군 공덕리에 장례지냈다가 1906년에 파주군 대덕리로 이장되었으며 1966년에 화도읍 차산리에 옮겨져왔다.

능제는 조선의 능원제도에 따른 듯하나 매우 간략하게 조성되었으며 봉분 주위에 석마가 배치되어 있다. 분분을 오르는 입구에는 '국태공원소'라고 크게 예서로 쓰여진 원표가 있으며 계단에는 태극 문양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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